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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2007.08 중국]

고구려 역사탐방을 다녀와서 [1일차] - 사진 스크롤의 압박조심.

by smolee 2007.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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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학기 5월 중순무렵에 우연히 학교홈페이지에서 운명적으로(?) 그 공지사항을 읽고 말았다. 서울시 중구청에서 주관하는 '충무장학 고구려 역사탐방'이 그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클릭을 해버린후에 읽어보니, 장학의 형식으로 중구청에서 고구려 역사탐방을 보내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 나의 고구려에 대한 지식의 폭은 매우 얕은것이라, 그 신청서류중에 '동북공정에 대한 보고서'항목을 보고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다. 이걸 써야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신청자 중에는 사학과라던지 고고학과 같은 전문 분야의 매우 잘 알고있는 학우들도 있을테고, 과연 그들과 경쟁을 해서 15명 남짓한 인원에 뽑힐 수 있을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일단 도전해보는것이 나중에 후회하는것 보다는 낫다는 어구를 곱씹으며 그때부터 고구려, 특히 동북공정에 대한 책과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특히 우실하 씨의 저서들에서 많은 정보를 얻게되었다.

 촉박한 시일에 맞추어(공지사항을 조금 늦게 확인했던지라 시간이 얼마 없었다)보고서와 관련 서류들을 학생복지실에 제출하고, 복학후의 눈이 핑돌정도의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탐방단에 뽑혔다는 소식이었다. '이게 꿈일까?'하는 생각도 하면서, 본관 강당에서 열린 예비 OT에 참석하였다. 길을 조금 헤멘터라 내가 들어갔을땐 이미 인솔하실 윤명철 교수님의 말씀이 거의 끝나갈 때 쯤이었고, 이어서 여행사 가이드 최호남씨의 설명이 진행되었다. 간단한 여행전의 준비 및 주의사항을 듣고 장학증을 받았다. 그리고 얼굴을 채 익히기도 전에 뿔뿔히 흩어져버렸다.
그 때는 이 사람들이 그렇게 장난기가 많고 재밌는 사람들일줄은 몰랐다(-_-;)

 그 이후에 잠시 부산에 내려와 있는 중에, 서울에서 따로 예비 모임을 가진다고 알려왔다. 아쉽지만 그 때 참석을 못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공항에서 약 40분정도 헤메게 된다..-_-

 8월 3일, 항상 메고다니던 가방에 대략의 속옷류와 의류, 세안용품만을 챙겨넣고 카메라를 메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쪽 자취방이 강북 미아동이기 때문에, 5일 아침 6시 30분까지 인천공항에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같이 느껴졌었다. 네이버 지식인이나 기타 여행기를 찾아봐도, 당일날 출발하여 공항에 도착하기는 힘들것 같았다(그놈의 테러때문에 2시간전에 도착해야하니...). 그래서 마음편하게 그 전날 근처 찜질방을 찾아서 자고, 다음날 일찍 공항으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게된다.


8월 4일.

 찜질방의 위치와 전화번호를 검색해 전화를 하니, 8시 30분 이전엔 4500원, 그 이후 입장하면 7천원이라 한다. '아싸 좋구나'를 외치며 널널하게 5시쯤에 방을 나서며 잠시 방과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바로 인천공항으로 갈 수도 있으나(리무진 버스 등) 최대한 줄여보자고 생각하여 김포공항으로 이동 후, 전용 열차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여기가 바로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의 승강구이다. 운영 주체가 일반 전철과 다르고, 전철 자체도 상당히 고급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물론 비싸다(운서까지 2600원이었던것으로 기억된다)






시설이 상당히 잘 되어 있으며, 그에 비해 이용객 수는 아직 그다지 많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저곳이 바로 운서역, 시설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이곳이 바로 문제의 찜질방. 물론 인천공항지하에도 찜질방이 있다, 그러나 굳이 여길 택한이유는 인천공항지하의 찜질방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이 극히 안좋고 가격도 비쌌다는데 있다. 그러나 내가 이 곳에 8시에 입장하려고 하니, 카운터 여자분의 말씀이 충격적이었다.
'8시부터는 7500원이에요'
전화로는 분명히 8시반부터 7500원이라고 들었다고 항변했으나 요지부동, 자신이 말을 잘못했을리가 없다며 버틴다. 할 수 없이 3000원을 더 내고 입장할 수 밖에 없었다. 사족이지만 아마도 통화상에서 뜨내기 여행객인것을 알고 그렇게 말했던것이 아닐까? 알수없는일이다.

어쨌든 책도 한권없고 시설도 부산기준으로는 좁은편에 속하는 이곳에서 자는둥 마는둥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한가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실, 왜 찜질방안에서 여자분들 내가 들어가면 다들 나가시는거지??(내가 넘 무섭게 생겼나;)





8월 5일

대충 씻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찜질방을 나선다. 후에 계속하여 후회하게되지만, 여행시에 등이 무거우면 안된다는 것은 자전거여행이건 도보여행이건을 떠나서 공통된 것 같다. 캐리어를 끌고 가라던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죄값일까..-_-






인천공항에 도착, 여기도 마찬가지로 멋지게 지어놓았다. 다만 좀 사치를 부린것이 아닐까...하고 생각되기도 했다.(나중에 느꼈지만 나의 이 생각도 중국에 가서는 '작은 스케일에 익숙해져 버린 폐해'라고 인식하게 된다)





저렇게 공항철도와 공항청사 간은 꽤 멀다. 워킹보드를 타고 걸으면 왠지 내가 축지법을 하는것같다는 생각... 나만 하는걸까?


 그렇게 도착하여 목적지 G카운터 앞에 도착했으나, 어디에도 학교 탐방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사실 OT때도 그렇고 예비모임도 못가서 얼굴을 몰랐다 -_-). 겨우 무언가 모여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물어보았으나 아니라는 대답.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른 팀이랑 우리 팀이 함께 있었는데, 내가 다른팀에게 물어보았던 것이었다.

어쨌든 겨우 만나서 여권과 티켓을 나눠받고 라운지로 이동했다. 역시나 다들 캐리어를 끌고 온 모습에 왜 가방을 메고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_-





라운지에서 찍은, 우리가 타고갈 대한항공 KE831기. 그다지 큰 여객기는 아닌 듯 하다. 이 사진을 찍고, 누구에겐가 '공항 사진은 찍는거 아니라는데요'라는 말을 들었다. 누구였지?;






역시 또한컷, 이렇게 공항에 와보면, 소위 '비행기 매니아'라는 사람들의 심리가 약간 이해가 간다. 미끈한 동체에서 왠지 모를 호기심이 생겨난다.






'출발하기 전에 기념 사진 한장 찍어요~'라는 누군가의 제안에 모두 모여 사진을 찍었다. 윗줄 좌로부터 수정, 윤지, 지혜, 지영(지혜와 지영은 자꾸 이름이 헷갈린다;), 승연누님, 혜경, 현지, 윤희, 초원(이 아니고 소원-_-)
앞줄 좌로부터 준호, 동일, 범윤, 창욱, 그리고 나.

이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불과 하루가 채 못되어 서로 본색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일본갈때는 없었던 저 LCD, 자동으로 내려오고 올라간다.
현재 시속 753킬로미터, 고도 7.1킬로미터, 심양까지는 503킬로미터가 남았단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지혜와 지영. 둘 다 처음에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아서 '참 다소곳하구나'하는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






비행기 탈때마다 찍는 바깥 하늘사진.. 푸른빛이 너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색.
그러나 대한항공에서 유리창 청소를 안하는지...-_- 흐릿한 저 얼룩.

기내식으로는 무언지 모를 중국음식 비슷한것과 기타 으례 나오는 메뉴들이 나왔다. 두부가 나왔던것으로 기억. 그리고 그 유명한 칭따오(淸島-한자가 맞는지 모르겠다)맥주가 나와서 냉큼 집어들었다.
나중에 보니 남자는 모두 맥주를 마시는 현상이...





드디어 중국 심양공항에 도착. 앞에서 웃으며 반겨주는 세관원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중국의 세관원들은 우리나라보다 더욱 굳은 표정이다. 미소하나 없다 -_-... 그리고 저 붉은 글씨의 압박. 나에게 중국에 대한 가장 첫 인상은 '사회주의 국가의 얼굴'이었다.





기내에서 어느정도 친해지니 이제는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준호, 수정, 범윤. 그리고 뒤에 동일.





또 한컷. 지영, 소원





공항을 나와보니 으례 기다리고 있어야 할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TC인 호남씨가 조금만 더 가면 있다고 하는 말을 믿고 약 15분정도 -_-(참고로 무지 더운날이었다) 걸어서 발견해 낸 버스. 중국버스중에 그나마 에어콘이 잘나오는걸로 수배하시느라 힘드셨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드디어 잊지못할 공포의 질주가 시작된다. 길은 시골길인데 버스는 마치 스포츠카처럼 달린다. 마치 이니셜D의 타쿠미의 피를 이은 양... 이때부터 한동안 일행들은 버스안에서 잠을 자지 못했다. 오로지 불안한 눈으로 앞만 바라볼뿐.
사진은 중국에 많이 있는 3륜차. 오토바이를 개조한것도 있거, 저렇게 아예 차모양으로 나오는것도 있는듯 하다. 상당히 귀엽다. 코너돌때 위험하지 않을까?




처음으로 보게 된 중국의 상점가. 중국 시골의 특징은 간판에 형광등이나 네온사인이 없고 오로지 인쇄해놓은 한장의 시트로 구성해놓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전기사정도 사정일것이고, 밤에는 유동인구가 없으니까 그럴것이다. 참고로 상점은 shangdian 이라 읽는다고 배운듯 하다.(샹띠엔). 그리고 가는길에 옥수수 밭도 많고, 집집마다 옥수수를 보관하는 탑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고구려의 '부경'의 흔적이라 한다.




첫 중국에서의 식사를 하게 된 고려성 식당. 우리는 중국현지식사를 무지무지무지 기대했으나, 지난 여러번의 답사때에 입에 안맞아서 아팠던 사람이 많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식사를 약간 변형된 한정식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중국 현지식을 먹었을때, 우리팀은 배탈난 사람이 아무도 없음으로 위장의 튼튼함을 증명하였다-_-





이렇게 야외에서 먹었는데, 이때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중국의 식사는 보통 원탁위에 회전가능한 유리판이 있어 거기에 차려놓고 돌려가면서 먹는다.




식당 앞 연못에서 한컷. 이때만 해도 다들 한국인처럼 보인다.





오녀산성으로 가는 중 한컷, 비가 중간중간 뿌렸다. 중국은 빗방을도 한국과는 틀렸는데, 일단 시작하게 되면 무지 굵은 빗방울이 성기게 내린다. 비 사이로 피해갈수도 있다 -_-(무지 신기한 경험)




오녀산성을 오르는 미니버스안에서. 중국사람들은 다들 운전을 이렇게 하는것일까 하고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급코너에서 전혀 속도의 변화없이 올라가고 내려간다. 이니셜D의 도랑타기도 가능할듯하다-_-. 처음엔 두려움에 떨다가 나중엔 다들 즐기게 되었다.(어차피 여행자 보험도 들어있고...)






오녀산성아래에서 한컷. 저렇게 위를 반듯하게 잘라버린듯한 산 속에 산성이 있다. 요녕성 환인현에 있으며, 고구려의 첫수도 홀본(졸본)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올랍성, 홀슬골성이라고도 불린다.험준한 산성이라 첫눈에도 점령하기 쉽지않아 보인다. 고구려 900년 역사동안 단 3번 점령되었다고 하니, 알만하다. 놀랄만한 사실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 성을 점령했던 사실이 있다고 한다. '음...내 선조가 여기에 왔었구나..'하고 잠시 생각에 잠기고...(참고로 본인의 본관은 전주이다)





이곳은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이기도 하다. 동북공정의 관련된 책을 읽다가 나온 '유네스코 지정'에 얽힌 비화가 있다. 원래 북한이 고구려문화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다가 실패하게 된다. 이에 중국은 깜짝 놀라게 되어 부랴부랴 등재 준비를 하여 북한과 공동으로 고구려 유적을 등재시키게 된다. 왜냐하면 북한이 먼저 등재시키면 고구려 역사의 정통성이랄까? 그런 면에 있어 북한에 밀리게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는 이러한 조그만 사실이 훗날 나비효과 같이 큰 정당성을 가지게 되는것이라는 교수님의 설명에, '역사는 좀 쪼잔한 면이 있구나'하고 혼자서 생각했다.





다들 999계단이라는 소리를 귀로 넘겨들으며 웃는얼굴로 오르기 시작한다. 중간에 비가 와서 우산을 준비못한 사람들은 신지형선생님께서 우의를 사주셨는데, 이 우의라는것이 또 고약스럽다. 정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욕들어먹을정도의 휴지처럼 얇은 비닐로 만들어놓아서 조금만 당기면 늘어지기 일쑤다. 가격은 10원.(우리돈 1300원)






대략 저런 계단이 약 20분 정도 이어진다. 점점 대열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저곳이 천창문이라는 곳인데, 후대에 이름을 붙인것 같다.





올라왔던 길을 내려보며 한컷. 올라오는 도중에 주의, 경고를 나타내는 그림이 참 재미있었다.





이곳이 오녀산성의 문이 있던곳의 유적이다.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돌을 쌓는 모양이 중간의 돌을 주위 6개의 돌이 싸고 있다고 하여 육합쌓기라고 한다. 이는 고구려 성벽의 특색이다. 또 양 쪽에 움푹 들어간 곳은 초소로 생각되어지고 있다. 한편 성을 쌓음에도 모서리가 모나지 않게 둥그런 모양으로 처리하여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안쪽에 잡석을 쌓아서 형태를 이루고 바깥에 반듯한 돌로 덮는 형식이다. 안쪽의 돌은 쐐기 모양으로 쌓음으로서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한다. 이를 견치석방식이라 한다.






이동하다가 한컷.






점장대로 가는 길에 있는 천지 연못. 생활에도 쓰이고 제례에도 쓰인것으로 추정된다. 산정에 있는것을 감안하면 꽤 큰 규모의 샘이다. 이 샘이 어디서 솟는지는 모르나 항상 깨끗한 물이 샘솟는다고 한다. 참고로 동일이가 들고다녔던 저 예비군연대용 메가폰은 거의 사용되지 못하였다...(교수님은 메가폰을 싫어해~-_-)







역시 점장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집터. 배수구와 화덕자리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오녀산성을 오를때 오준화 재중동포 가이드분 외에도 현지 가이드 '원비'씨가 동행하였는데, 아쉽게도 같이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들 숫기가 없어서...(라지만 머지않아 다들 얼굴에 철판을 깔게 된다 -_-).






여기가 바로 점장대. 고구려 성에서 나타나는 특징중의 하나이다. 점장대의 기능은 보면 알겠지만 시야의 확보를 통한 적 군세의 탐지, 더불어 아군의 지휘를 수월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내려다 보는 오녀산성 아래의 풍경은 정말 산과 산으로 첩첩히 막혀있어,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고구려는 이러한 산세를 이용하여 몇겹의 방어선을 쌓고, 또한 그 산성을 진격의 거점으로 삼았다.




신선생님, 지연, 현지. 신선생님께서는 군용 판쵸우의를 챙겨오시는등의 막강한 준비태세를 자랑하셨다. 현지가 입고 있는것이 문제의 우의. 후에 사용후 다들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된다. 현지의 디카는 여행막바지에 렌즈에러로 현지를 괴롭히기도 했다-_-





열심히 설명하시는 윤교수님. 참가 신청후 책을 읽으며 알게된 사실이지만, 교수님은 단신으로 뗏목을 타고 당시 고구려와 일본간의 뱃길 루트를 확인하기 위한 항해를 하시는 등으로, 소위 '몸으로 증명해내는' 역사학을 실천하시는 대단한 분이셨다. 그리고 중앙의 황상석 기자님은 이번 탐방의 취재를 위해 동행하신 분으로 꽤 큰 인터넷 언론사의 지역본부장이셨다. 여행내내 교수님과 함께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점장대에서 내려본 풍경. 적이 오는것을 정말 쉽게 볼 수 있을것 같다. 우측에는 댐이 있는데, 그 아래에도 고구려 유적분이 많이 있었으나 몇기만 발굴 조사를 하고 수몰시켰다고 한다. 이 설명을 들을때 왠지 열받는 느낌...탐방을 계속하면서 이러한 왠지 억울한 느낌을 계속 받게 된다.






점장대 아래 풍경을 가리키며 설명하시는 교수님. 항상 이동때 일행은 물을 들고 다녔다. 날씨가 많이 덥고 햇빛이 강하기 때문에, 탈수현상의 위험이 큰곳이 중국이다.






기념 촬영. 아직까지 다들 얼굴이 쌩쌩하다.





다시 오녀산성 입구에서.




육합쌓기의 전형적인 모습




내려갈때는 다른길로 내려갔다.





기암괴석들의 모습
예전 고구려군은 어떻게 이 성을 오르내렸는지 정말 신기하다. 갑옷까지 입고서 이 경사를 오르내릴수 있었던 것일까?




후대에 이름붙인 것 같다.





어느덧 후발대가 되어버린 우리들끼리의 기념촬영 -_-;





소원 오녀산성 트래킹 완주기념 사진. 저 포즈를 보라






산 아래서 찍은 오녀산성 기념촬영.






산아래 서있던 삼륜차를 한장.





처음으로 본 통화 시내의 전경. 중국 변경의 특징은 잘지어놓은 곳과,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건물들이 언밸런스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현대화 되고 있는 것이리라.







'한갑잔치' 가 인상깊었던 식당 금화.






이제부터 슬슬 '밥먹기전 사진찍기'가 시작된다. 대략 저렇게 요리가 나오며, 향신료를 많이쓰고 특히 고추, 피망등의 향이 강한 야채를 즐겨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밥도 큰 그릇에 나와서 덜어먹게 되어있는데, 이 숟가락이란 것의 모양이 요상해서(작은 계량 국자같이 생겼음) 밥먹기에 약간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가지, 여기서는 리필의 개념이 아니라 '추가'의 개념이다.





밥을 먹고 밖에 나와서 휴식을 취하는 팀원들. 금화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슈퍼마켓에서 눈뜨고 코베이는 사기를 이모씨가 당할뻔 한 사건이 일어났다(사탕한알 사건). 중국은 대놓고 사기, 바가지씌우기를 한다는것을 다들 처음 깨달은 역사적인 순간. 이후부터는 다들 점점 요령이 생기기 시작한다.







호텔로 가는 길에서, 강을 따라 위치한 화려한 건물들. 중국은 이렇게 야경을 등으로 치장하는것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동산호텔. 이틀동안 묵은 곳이다.
통화에서 좋은 축에 든다는 호텔이라지만(3성호텔) 시설은 우리나라 모텔보다 못한수준..(모텔을 가봤다는 얘기가 아니다 -_-) 칠이 떨어진 욕조는 정말 아니었고, 두께 0.5cm정도의 두꺼운 휴지는 정말 최고였다 -_-;
티비를 트니 한국 방송은 안나오고, 중국말로 더빙한 철지난 한국드라마가 한류를 증명해주었다.




첫날을 기념하며 서로 자기 소개 겸 오늘의 감상을 말하는 자리를 가졌다. 회의실이 있었지만 꽤 비쌌던터라, 로비에서 의자를 모아놓고 간단하게 모임을 시작했다.





맞은편 로비의 모습.







중국에서 제일 많이 먹은것은 아마도 중국 생수와 더불어 중국 맥주가 아닐까? 중국 맥주는 내가 느끼기에 국내 맥주보다 꿀릴것이 없는것 같다. 가격도 저렴하고..
병당 4원전후(약 520원정도). 그중에서 snow라는 상표의 맥주가 가장 유명한듯 하다.






여성분들 사진. 여성팀원들은 술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섭섭하게도...
그러나 몇일 지나지 않아 다들 진면목을 드러내게 된다.





국회의원이 꿈인 수정의 달변에 숙연해지는 일행들. 정말로 갑자기 진지해지는것이 특기이다.





수고가 많았던(인간 오프너) 조장 동일의 한마디.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였다.






호텔 옆에 있던 공원 입구앞에서 한컷. 잠옷입은 모씨는 춥다고 부들부들 떨고 -_-a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왠지...


이렇게 해서, 중국에서의 첫날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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