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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며..

부장님의 정년 퇴임식을 끝내며..

by smolee 2010.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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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우리 팀의 부장님 퇴임식을 진행했습니다. 

퇴임식이라고 하지만, 업종의 특성상 IT업은 이직이 잦은 경향이 있고...또 IMF를 거치며 많은 분들이 이직이나 퇴직을 하였다가 다시 회사가 원기
회복하며 발전을 하고 있는 관계로 이번의 퇴직은 회사 전체를 통틀어 3번째, 그리고 우리 팀에서는 첫 번째 정년 퇴직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회사의 역사가 짧은 편도 아닌데..이제 세번째 퇴직이라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만...역시 뭔가를 처음 한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죠.

일단은 데드라인을 잡아놓고 앞서 퇴직하신 분들의 퇴임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인맥을 통해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크게 나누어 보니 업무가
'선물준비'와 '식장준비' '식사준비' '식순' '동영상 및 사진준비'로 나눠지더군요. 과장님께서 추진력을 발휘하셔서 각자에게 맞는 업무를 나눠 주셨고, 
그 중 저는 동영상 및 사진 촬영/편집을 맡았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가족의 인사말 동영상 촬영을 위해 부장님 댁인 분당으로 향했습니다. 분당은 개인적으로 처음 방문하는 지역이었는데, 첫인상은
마치 해운대 신도시와 같더군요. 어디든지 신도시는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모님을 만나, 첫 촬영에 서로 어색해 했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어색함을 풀어 갔습니다. 사모님의 주된 관심사는 자녀들 걱정이었는데..역시 부모님 마음은 누구나 같으신거 같아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래도
큰 딸이 이미 좋은 곳에 취업을 해서, 저도 걱정이 덜어지더군요.

그리고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사모님께서 감정을 자제하기 힘드신지 거듭 눈물을 보이셔서 진행에는 약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도 눈물이 날 뻔
했더랬지요. (사실 어울리지 않게 감수성이 지나칩니다) IMF때 저도 같은 경험을 해 보아서, 이 정년 퇴임이라는 것이 꼭 축하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55세..하던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 나이로는 정말 너무 짧지요. 물론 후배 직원들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주기도 해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베테랑'들이 자신의 노하우를 가지고 그냥 사장되어야 하는 이러한 인력 구조에 불만이 있습니다. 

몇년 전 도입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임금 피크제를 도입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나이가 들어서 이렇게 축하할 일이 아닌 일종의 강제적인 
퇴직을 당하게 되면..그동안 쌓아왔던 프로로서의 노하우의 손실도 회사적인 손실이지만, 더불어 그 사람은 모든 것이 낯선 환경에서 처음부터 직업을 구해
야 하니...(한국의 실정에서 55세의 나이에 자신이 해왔던 업무 노하우를 살려 새로운 직업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퇴직금과 자녀의 뒷바라지가 있겠지만서도 사실상 많이 힘들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대기업의 부장까지 하던 분이, 장사를 하거나 하다못해 빌딩 경비
를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요... 임금 피크제를 도입해서..지금까지 받던 연봉의 1/2만 아니 1/4만 받더라도 일을 하실 수 있다면 이 분들은 신입사원 보다
더욱 긍지를 가지고 '그래 내가 아직 이 회사, 이 사회에서 쓸모가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최선을 다하시리라 생각 되는데...그렇지 않을까요?

어쨌던....이렇게 동영상 촬영을 끝내고 연거푸 사양을 하였는데도 부하직원이라 식사를 사주시려는 사모님의 권유에 밀려 결국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며, 많은 얘기를 나누며 역시 부장님도 우리 아버지 처럼 모든걸 다 바쳐서 일만을 향해 달려오신 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이전 세대,
아버지 세대들은 그렇게 일에 모든걸 바친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때 기억에 아버지는 항상 아침일찍 나가셨고, 저녁엔 고등학교 때 까지도 저녁 10시나 들어오시곤
했습니다. 아버지 얼굴을 못보고 먼저 잘 때도 많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불효하고 철이 없었지만... 그렇게 아버지는 가족이면서도 몇번 얼굴을 보지 못하고, 휴일이면
늦게까지 주무시기나 하는 그런 가족외적인 사람으로 생각되어지곤 했습니다. 지금 제가 회사를 다니면서 이제야 깨닫고 있고, 죄송하고 안쓰럽기만 합니다.

요즘 세대(저 포함)는 물론 그렇게는 살지 않으려 하죠. 주변에 아는 사람들도  더 좋은 근무 환경을 찾으려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업무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 보면, 계열사 중국 현지직원들은 우리직원이 저녁 늦게 야근을 하는 것을 이해를 못한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야근 문화는 유럽에도, 하다못해 중국에도 없는 문화인 것
같은데...개인적으로는 일과 생활이 밸런스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이지 않나 라고 생각합니다만 실제 다녀보니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얘기가 점점 삼천포로 빠져드네요.
아무튼 그렇게 가족 동영상을 촬영하고, 임원분들 그리고 같이 업무를 오래 하셨던 동료 직원분들을 찾아서 섭외하고 약속을 잡아 동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역시 최초로 퇴직을 하다 보니 인사말씀들을 하시는데도 다들 어떻게 하실지 어색해 하시더군요. 그마만큼 진심들은 가득 담겨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댁에서 받아온 예전 부장님 사진들을 스캔해서 파일로 만들고, 동영상으로 꾸몄습니다. 대략 한 3~4일 정도가 걸리더군요. 특히 음악을 선정하고,
싱크를 맞추는 작업이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이십 몇년 전 사진속의 제나이 무렵의 부장님 모습이 생소하기도 하고, 시간의 거센 흐름에 서글픔도 느껴졌었습니다..

이래저래 준비를 마치고, 이윽고 식이 시작되었지요. 때 마침 비도 추적추적 내렸지만 나름대로 팀원들 전부가 바쁜시간을 쪼개어서 준비한 식은 다행히 별다른 
불상사 없이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일렬로 서서 전 팀원과 악수를 하시고는 차에 오르셨습니다. 악수를 하시는 분들 그중에서는 같이 
업무를 하시면서 미운정도 고운정도 나름 사연도 많이 있으셨을텐데.. 그 순간에 모두 다 털어 버리셨겠지요.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나는 과연 어떤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까..하고 미리 걱정도 하게 되고...여러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떤 이별이던지, 어떻게 미화하고 꾸미던지, 이별은 참 슬플 수 밖에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신입으로 입사할 때 부터 챙겨주시던 분이라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물론 약간 소심한 제 성격상 가까이 허물없이 대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매년 명절마다 찾아 뵙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상투적인 말이지만 멋진 제2의 인생을 사시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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