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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일상들

스쿠터 수리를 하고 왔어요

by smolee 2010.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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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네요. 별로 할일도 없는 아침시간이 아쉬워 공구를 챙겨들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합니다. 얼마되지 않는 길인데도, 가까워 질수록 알수없는 기대감이 일어나는걸 느끼며, 주차장에 이르러, 구석에 먼지가 가득쌓인 천을 조심스레 들쳐냅니다.

꽤 오래전 모습 그대로 스쿠터가 서있습니다. DK-50, 흔히 핸디라고도 불리는 이 오래된 스쿠터는 나보다 나이가 몇살 어립니다. 83년도부터 만들어졌으니 이제는 골동품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지요. 곳곳에 녹이 슬고, 한때는 선명하였을 붉은색은 이제는 얼룩이 지고 바래버렸습니다.

외관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않기때문에 잘 타고다녔지만, 얼마전부터 가만히 서있으면 기름이 새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부품이 오래되어 삭아버린게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며 카울을 뜯고 나사를 풉니다. 하나하나 공구를 바꿔가며 분해를 하고 닦아냅니다. 차가운 바람에도 이마엔 땀이 흐르지만, 손은 갈수록 빨라지고 기대감은 더 커져가지요.

마침내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처음에 예측했던대로 부품이 많이 낡아서 그랬군요. 다행히 가지고있는 보수용재료로 고칠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런종류의 올드바이크는 부품을 구하기가 정말 쉽지가 않거든요.
다른 부품이 정상이어도 조그만 하나의 부품을 구하지 못해 운행을 하지못하고 폐기처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조립을 합니다. 이래저래 날씨는 춥고, 할일은 많은데도 마냥 신나기만 합니다. 이제 기대감은 다른종류의 감정으로 바뀝니다. 조립후 제대로 달려줄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다소 섞인 기대감으로요. 그 기분 속에서 이윽고 조립이 끝났습니다. 살며서 세조기를 돌리고, 키를 돌리고, 힘차게 킥 레버를 밟습니다. 푸드드득 하고 잠투정을 합니다. 조바심에 몇번 더 밟아봅니다. 이윽고 시동이 걸리고 나는 긴 한숨을 쉽니다.


핸들을 잡고 힘껏 눌러서 기름통의 찰랑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기름확인 창이 없거든요). 기름이 어느정도 남은것을 확인하고 스로틀을 약간씩 감습니다. 흰연기를 내뿜으며 바퀴가 돌아갑니다. 매캐한 연기는 분명 건강에 안좋겠지만, 그 냄새가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것일까요..


주차장의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오릅니다. 오랜 세월은, 언덕을 오를 힘을 빼앗아갔나 봅니다. 이윽고 평지가 나오고, 배기음을 살피며 스로틀을 끝까지 감습니다. 긴 휴식을 깨고, 엔진이 진동합니다. 엔진과 기어와 플러그와 베어링과 머플러가 저마다 오랜만의 주행에 기쁘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한계까지 달려봅니다. 예전과 다름없는 속도, 예전과 다름없는 느낌을 받습니다. 역시나 아직은 쓸만한 스쿠터구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핸디를 타고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참 많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작고, 오래된 기계 하나가 나에게 이렇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이상하고도 신기하네요. 나 이전에 이 스쿠터를 탔었던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곳을 저 두바퀴로 달리며 추억을 만들었을까요....



어쩌면, 이 스쿠터가 예전에 전 주인과 달렸던 길을 내가 다시 달리고 있지는 않은건지 하고 생각해봅니다. 나 다음에 같이할 사람도, 내가 달렸던 길을 달릴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그사람이 쓰던 물건에는, 기억이 스며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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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아침, 추운날씨에 / Minolta Dynax 5 digital / Minolta 18-7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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